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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물 이야기

by ryanlion 2019. 8. 26.

지각 구성 원소 중에서도 네 번째로 양이 많은 철은 다른 원소보다 광석에서 석출 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따라서 구리와 청동의 발견에 뒤이어 나타난 절기시대 는 인간이 이룩한 위대한 기술적 위업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기술은 수 많은 인류가 고통을 겪었던 첫 번째 암혹기에 빠르고 넓게 퍼졌다. 일단 철이 사용되기 시작하자, 일상생활과 각종 산업에서 쓰였던 다른 금속들은 서서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 야만 했다.


첫 번째 '암흑시대'

초반부에서 우리는 언제 구리와 청동 야금술이 출현했는지, 또 각 금속의 생산과 교역이 어떤 식으로 초기 인류 문명의 발달에 박차를 가하고 상업 • 기 술 • 문화 • 지식 • 예술 등에 영푱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인류는 갑작 스럽고 혹독한 파국, 이른바 청동기시대의 붕괴기원전 1200-기원전1150무렵를 맞이하였 으며, 이후 수 세기 동안 수많은 도심지가 파괴되고 버려지면서 결국 각지의 문 명들은 소멸하고 말았다. 그리고 과기에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또 다시 암 혹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로마의 멸망에 큰 영향을 받았던 지역 중에는 비록 그 규모가 크게 줄어들긴 했어도 일부 중심지가 여전히 존속된 곳이 있었고, 중국처 럼 이 사건과 아예 무관했던 곳도 있었다.
청동기시대의 붕괴를 맞이하여 이들이 겪은 역경은 매우 혹독했고 또 절망 적이었다. 시리아 연안에 자리 잡은 도시국가 우가리트Ugarit는 청동 기시대 무역의 주요 집산지이자 이집트 • 그리스 • 키프로스 •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연결점이었다. 그곳 사 람들이 사용한 서른한 가지 글자는 훗날 영어를 비롯해 여러 문자가 발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원전 12세기 초에 우가리트는 '해양 민족seaPeoples'이라는 미지의 적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이 해적들은 이후 8세기와 11세기 사이에 유럽을 침공한 바이킹 보다도 훨씬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기원전 1190년경, 우가리트의 마지막 왕은 해양 민족과 맞서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며 여러 주변국과 동맹국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서신을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적의 전함이 이곳에 다다랐습니다. 도시는 불타버렸고 놈들은 이 나라에서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맹국들 역시 나름의 문젯거리로 시달렸던 탓에 우가리트에게 아무런 도음을 주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가리트는 적군의 공격에 송두리째 파괴되어 역사 속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로부터 10년 후 히타이트( 오늘날 터키의 아나톨리아을 비롯한 근방의 국가와 도시)들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 했다. 파라오가 다스리던 이집트는 간신히 해양 민족을 물리쳤지만, 바로 다음 세기에 남쪽에서  올라온 누비아Nubia족의 침략에 굴복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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